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한 어머니의 시간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연극 〈고래와 불가사리〉가 오는 2026년 5월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성북구 놀터예술공방에서 공연된다. 공연은 한성대입구역 7번 출구 인근 공연장에서 총 6회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고등학교 1학년 딸 ‘지호’를 잃은 어머니 ‘은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딸의 죽음 이후 은숙은 1년 6개월에 걸친 법적 다툼을 이어가지만, 사건의 끝에서 가해 학생들에게 내려진 처분은 교내 봉사활동 40시간뿐이었다. 가해 학생 부모들이 검사, 국회의원, 대학병원 원장, 중견기업 대표 등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설정은 사건 이후 피해 가족이 마주한 현실적 무력감과 구조적 벽을 드러낸다.
은숙은 딸에게 한때 “엄마는 고래 같아”라는 말을 들었던 인물이다. 넓은 품으로 무엇이든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머니였지만, 정작 자신의 딸을 끝내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를 깊은 침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은숙은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방 안에 머문다. 그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상실 이후 멈춰버린 시간과 닫힌 마음을 상징한다.
〈고래와 불가사리〉는 사건을 순서대로 재현하는 방식 대신,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을 택한다. 관객은 무너진 현재의 은숙을 먼저 마주한 뒤, 딸과 바다를 바라보던 따뜻한 봄날의 기억,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졌던 그 새벽의 순간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시간의 역행은 은숙이 피하고 싶었던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이자, 상처의 뿌리를 향해 내려가는 여정으로 읽힌다.
작·연출을 맡은 황승현은 작품의 핵심 이미지인 ‘불가사리’에 대해 “불가사리는 입이 없다. 우리는 그 침묵을 강함이라고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장 두려운 것은 외면이 스스로를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순간”이라고 밝히며, 이 작품이 단순히 한 사건의 비극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음을 전했다.
작품은 학교폭력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을 섬세하게 비춘다. 법적 절차가 끝났다고 해서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며, 처분이 내려졌다고 해서 책임이 온전히 다해지는 것도 아니다. 〈고래와 불가사리〉는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는 유가족의 하루, 말하지 못한 감정, 사회적 외면과 침묵의 무게를 무대 언어로 풀어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숙이 닫혀 있던 문을 여는 장면은 이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것은 완전한 치유나 극적인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더 이상 방 안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작은 결심, 그리고 자신처럼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존재들을 향해 다가가려는 첫걸음에 가깝다. 한 불가사리를 품지 못했다는 아픔을 지닌 고래가, 이제 다른 불가사리들이 머물 수 있는 바다가 되려는 순간이다.
이번 공연은 극단 피자가 제작한다. 작·연출 황승현, 예술감독 노은미, 조연출 모채원, 조명 이윤채, 무대 고영봉, 음향 이영주·이윤주, 영상 디자인 마이닝(Mining)이 창작진으로 함께한다. 배우 김민희와 이서영은 70분 동안 두 인물의 호흡만으로 11년에 걸친 상실과 기억, 침묵과 회복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연극 〈고래와 불가사리〉는 묻는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어디에서 멈출 수 있는가. 침묵하는 사람들은 정말 강한 것인가. 그리고 닫힌 문은 다시 열릴 수 있는가. 작품은 그 질문을 관객에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남긴다.
공연 정보
• 작·연출 | 황승현
• 출연 | 김민희, 이서영
• 예술감독 | 노은미
• 조연출 | 모채원
• 조명 | 이윤채
• 무대 | 고영봉
• 음향 | 이영주, 이윤주
• 영상 디자인 | 마이닝(Mining)
• 제작 | 극단 피자
• 일시 | 2026년 5월 13일(수) ~ 17일(일)
◦ 평일 19:30 / 토요일 15:00, 18:00 / 일요일 15:00
• 장소 | 놀터예술공방 (서울 성북구 성북로2길 21, 지하 1층)
• 러닝타임 | 70분
• 티켓 | 전석 30,000원 (놀티켓 예매)
• 문의 | 010-4560-4707
※ 본 작품은 학교폭력 피해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으로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